빗대어 설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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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뇌에는 우리를 사로잡거나 감동시키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이른바 '시적인 기억'의 영역이 있는 듯하다... (중략)... 이전에 나는 비유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랑은 비유에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사랑은 상대가 우리의 시적인 기억에 첫 단어를 입력하는 순간 시작된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어릴 때 tv에서 뉴스를 보다보면, '여의도 면적의 8배' 같은 표현이 종종 등장했다. 여의도가 서울 시내의 지명인 것도 몰랐던 나에게 이 설명은 늘 혼란스러웠다.
엄청 넓다는 뜻 같기는 한데 어느 정도인 걸까? 여의도의 몇 배라고 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이해하는 걸까? 여의도 직장인인 뉴스 앵커와 작가들에게는 직관적이었겠지만, 서울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준이 왜 여의도인지도 20대 중반에 서울로 이사와서야 이해했다.
사람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소통이 업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전달력은 매우 중요한 스킬이다. 그리고 적절한 비유는 전달력을 아주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 하느니만 못한 비유를 하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 한다.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 PM은 보통 어떤 화면이나 사용자 경험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다. 모든 걸 다 와이어프레임이나 프로토타입으로 보여주기란 불가능하다. 이럴 땐 모두가 자주 사용하는 앱을 예시로 드는 것이 좋다. 다같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Gmail, G-suite, 슬랙, 노션, 카카오톡 모두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구글 드라이브처럼 드래그앤드랍 영역이 넓으면 좋겠어요.
슬랙처럼 개별 메뉴에 표시되는 업데이트 사항을 글로벌하게 모아서 보는 인터페이스도 따로 있으면 좋겠어요.
노션처럼 목차 구조가 너무 유연하면 곤란해요. 구조가 명확하고 내비게이션이 쉬워야 해요. Depth를 제한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이번에 추가하는 알림은 전에 보내던 알림들이랑 구분되어야 해요. 아이콘이랑 알림음 모두 확실하게 차이가 나야해요. 전달하는 정보의 종류가 다르니까요. 앱 푸쉬 알림이랑 재난경보가 같은 알림으로 오지 않는 것처럼요.
반드시 앱이 아니어도 좋다. 일상에서 많이 접하는 것들 중 좋은 예시는 교통수단이다.
플로우의 시작과 끝에 사용하는 인증수단은 반드시 동일해야 해요. 승차할 때 찍은 카드로 하차할 때 찍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우리같은 경우에는 문자인증, 전화인증, pin 입력 중 사용자가 원하는 수단을 고를 수 있으니까요. 대신 하나를 골랐으면 그 수단으로 마무리해야해요.
옵션 A는 비용이 높은 대신 자유도가 높고 커스텀이 용이해요. 옵션 B는 자유도가 낮고 커스텀이 불가능하지만 비용이 훨씬 낮아요. 택시와 버스를 생각하면 편합니다.
새 기능을 기존 인프라에 구축하면 비용이 훨씬 절감되지만 운영 단계에서 여러 요인에 의해 퍼포먼스가 저하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반면 새 인프라를 구축해서 운영하면 의존성이나기복 없이 운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력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들겠죠. 버스 노선을 개통하는 것과 새로 지하철 노선을 개통하는 것 만큼이나 다른 성격의 선택입니다.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유의 대상을 보수적으로 선정해야 한다. 너무 트렌디하거나 특정적인 대상을 고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나 많은 정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요즘에는, 모두가 알고있는 화제나 전통적 의미의 슈퍼스타같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직접 접하는 것들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안전하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일단 설명하려는 개념을 비유에 기대지 않고 정확히 전달한 후에 마지막에 부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 비유로 어떤 얘기를 하려는 건가' 고민하느라 정작 중요한 내용을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비유에 기대면 추상화가 쉬워지지만 한계에 갇히기 쉽다.
특히 중요한 개념을 설명할 때나, 작업 요구사항처럼 상세한 정보를 전달할 때 비유를 무책임하게 활용하면 혼란이 가중된다. 아래 세 가지를 염두에 두면 혼란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다.
비유적이지 않은 정보를 같이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때문에 비유했는지 명확히 설명한다.
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개의 레퍼런스를 제시한다.
또한 정보를 제시할 때도, 상황과 대상에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어떻게 가요?
"공항철도나 버스, 택시를 타면 됩니다."
지도 앱의 경로검색 결과를 url로 공유한다.
질문한 사람의 니즈(소요시간, 편의성, 예산 등)를 질문해 파악한 후 특정 방식을 추천한다.
위 세 가지 대답 모두 정답이 될 수 있다. 상대나 나의 상황에 맞추면 되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기는 요령도 아니니 연습과 학습을 통해 키워나가면 된다.
비유를 사용하는 행위 그 자체보다 비유의 대상을 발견하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다. 평소 부주의하게 지나칠 법한 것들을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기본 달력 앱이 아닌 특정 달력 앱을 쓰고 있는지, 사용자로서 앱의 어떤 요소에 편리함과 불편함을 느끼는지,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 만들어진 과정에 어떤 고민이 있었을지 관찰하고 유추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비유는 어쩌면 노력을 직관의 영역으로 위장하는 화술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일상에서 비유할 때는 개인별 편차가 큰 대상을 가져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의식주나 인간관계, 여가 같은 주제의 경우 생각보다 각자의 경험과 관점이 굉장히 다르다. 입을 옷을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 회색 티만 입는 와 패션 인플루언서를 한 자리에 앉혀놓고 "내가 입을 옷을 고르는 것처럼 환경 설정을 커스텀하세요" 라고 말한다면, 대체 어떤 의도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