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 최대의 수혜자는 PM
How Agile made my life easier
형식은 감각에 흔적을 남기기 위한 방법이요, 감각에 직접적으로 남은 인상과 기억을 중재하는 수단이다. 형식이 반복이나 과잉 원칙에 의존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기억 기능에 있다.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끊임없이 겪은 Pain Point는 크게 아래와 같았다.
문제 정의에서 솔루션 도출, 구현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과 스트레스.
내 업무의 결과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음.
요구사항이 디자인으로, 그리고 기능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기획의 의도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반복.
기능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오류와 보완점이 나올 때마다, 기획을 전달한 입장으로서 자기효능감이 떨어짐.
더 좋은 솔루션을 구현했을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
일방적으로 정보 전달을 하는 회의.
일방적인 진행 방식으로 인해 참여자 사이에 불균형이 생김.
이로 인해 회의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집중력이 저하됨.
'발언할 시간'이 주어져도 참여도가 저조함.
나는 거의 매번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단계를 겪어왔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 충분한 가이드 없이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해야 하는 환경에 있었다. 업무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과정에 대한 고충이 많았다. 새로운 팀과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대체로 즐겁지만 때로는 고통스럽다.
나의 고통(Pain)을 들여다보며 도출한 결론은 두 가지였다.
두 번째 Pain은 첫 번째 Pain의 원인이기도 하다.
협업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Pain 해결에 한계가 있다.
스토리 포인트 산출을 도입한 이유
스토리 포인트라는 결과물보다는 산출하는 과정에 주목함.
산출 과정에서 솔루션의 필요성과 유저의 상황에 대한 팀 전체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음.
백로그의 내용과 우선순위를 주기적으로 상기할 수 있는 루틴이 됨.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팀 리소스의 충분/부족 여부를 평가할 만한 정량적인 지표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됨.
회고 방식을 변경한 이유
핑퐁이 많이 오갈 수 있고, 명확한 To-do를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는 회고를 원함.
한 명씩 돌아가며 회고를 공유하는 방식으로는 상기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움.
기존 방식도 그대로의 효용이 있지만, 팀의 사이즈가 커져서 회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커짐.
결국 플래닝과 회고의 형식이 핵심이었다.
형식, 포맷, 절차는 고루하다는 인상을 준다. '젊은' 조직에서 반드시 부수어야 할 장벽처럼.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보면 공유할 지식의 양이나 복잡도가 증가할수록, 협업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형식의 힘이 커진다. 사실상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잘 가다듬어진 형식을 적합한 상황에 활용한다면 내용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서두에 인용한 수전 손택의 말처럼, 애자일 코치들이 소개하는 어색하고 이국적인 회의 방식의 핵심은 반복적인 리추얼을 통해 애자일 매니페스토가 추구하는 감각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위 두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행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임팩트가 큰 한편, 팀에서 비교적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활동이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고, 아직 미흡한 부분도 많다. 자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각각 별개의 포스트로 서술할 계획이다.
각 솔루션이 가져온 결과는 아래와 같다.
스토리 포인트 산출
전체적으로, 태스크에 대한 맥락적 이해도가 증가했다.
팀원들의 업무와 성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사용자 중심 사고를 주기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회고 방식 변경
유기적으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회고의 목표와 의의가 뚜렷해졌다.
많은 고민과 의구심 속에 시도했지만,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 결국 제일 덕을 본 건 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 홀로 기획을 할 때는 스스로가 요리 경험이 없는데 레시피북을 출판하는 요리연구가처럼 느껴지거나, '요리는 내가 했지만 서빙하기 전에 간은 당신이 보세요'라고 말하는 요리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주 가졌다. 허당 요리연구가나 무책임한 요리사가 되지 않으려면 경험이 많은 요리사와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고객의 말을 전해주는 서버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사실 프로덕트 매니저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허당 요리연구가의 운명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그 요리연구가가 혼자가 아니라면 꽤 괜찮은 레시피북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주 훌륭한 요리를 손님에게 대접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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